2015년 3월 9일 월요일

Classic travel - Beethoven(2)


Enlightenment and Frace revolution and Beethoven

(계몽주의 사상과 프랑스 대혁명, 그리고 베토벤)




계몽주의는
이성, 즉 ‘자연의 빛을 다방면에 미치도록 하는 것으로
구습()을 타파하고자 하는 18세기에 주로 프랑스, 독일에서 전개된 사상운동이다.
프랑스에서는 정치와 심각하게 접전하는 형태를 취하였지만
정치적으로 후발인 독일에서는 주로 개인의 내면적 개발을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정치의 관점에서 말해야 하는 것은 몽테스키외(Charles-Louis de Secondat, Baron de La Brède et de Montesquieu), 볼
테르(Voltaire), 루소(Jean-Jacques Rousseau), 디드로(Denis Diderot),
엘베시우스(Claude Adrien Helvétius) 등이 주도하였던 프랑스 계몽주의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대혁명은
1789년 7월 14일부터 1794년 7월 28일에 걸쳐 일어난 프랑스의 시민혁명.

앞의 포스트에서도 언급했지만,
각시대별 음악가들은 본인의 시대의 시대상으로 부터 자유로울수 없었다.
베토벤의 경우는 정말 격동의 큰 변화가운데 있었다.
계몽주의 사상은 그간 군주 밑에서 무조건 적으로 복종하던 시대를
사람중심의 시대로 바꾼 것이다.

영국의 철학자 로크는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이며,
국가는 시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존재요,
국왕은 그 집행기관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곧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촉발하게 되고,
유럽사회는 더이상 군주사회가 아닌
평면중심의 자유민주주의 사회로 탈바꿈하게 된다.

베토벤의 음악상은 이러한 계몽주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음악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계몽주의 사상은 독일에서는 인간의 내면의 계발을 중시하는 것이었고
프랑스에서는 이것이 정치적으로 발현되었다.

당시 독일의 영향아레 있었던 빈은 이러한 인간의 내면을 중시했던 분위기 속에
개인의 감수성을 중요시 했으며,
그에 따라 베토벤의 즉흥적 연주는
듣는이로 하여금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한 일화로 프리즈 백작의 집에서
시타이베르트라는 피아니스트와 피아노대결을 벌이던 중
베토벤이 제시한 주제를 시타이베르트가 더 화려하게 전개시키자
베토벤이 시타이베르트의 악보를 거꾸로 놓고
더 화려한 연주를 선보였다고 한다.

베토벤은 음악공부에도 열성적이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는 그렇다 치고
하이든의 제자가 되어 가르침을 받았다.
하지만 하이든은 이미 너무 오래전 방식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아래
계속하여 새로운 것을 찾았던 베토벤은
식상함을 느끼고 하이든 몰래
다른 음악가들을 찾아 교육을 받았다.



1795년 그는 첫 공개 연주회에 참여하여,
피아노 소나타 2번(Piano concerto no.2, Op 19)과
피아노,바이올린,첼로를 위한 3개의 3중주 작품 1을 선보였다.


A confident musician, Beethoven

당당한 음악가 베토벤




계몽주의 시대상의 영향을 받은 베토벤은
예전시대의 음악가들과 다른 태도를 취했다.
즉, 음악가들은 주로 귀족들의 후원을 받으며 자신의 생계를 유지해 나갔는데,
다들 자신의 후원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지극한 '을'의 태도를 취한 반면,
(모차르트는 먹고살기 위해 귀족들을 찾아다니며, 을의 태도를 취했다)
베토벤은 모차르트를 후원하던 귀족을 포함하여
많은 귀족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지냈는데
그들에 대해 항상 당당한 태도를 취하였다.

귀족들의 모임에서 독주회를 열던중
술,담배를 하면서 떠드는 귀족을 향해
큰소리로 "음악을 모독하지 마시오"라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가버리는가 하면,

어느 후작의 집에서 연주를 강요당하자,
집을 박차고 나와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기도 했다.

"백작, 백작이라는 벼슬은 우현히 생긴 것이지만,
나는 내 힘으로 생겼소, 그런데 나에게 명령조로 연주를 강요하다니,
매우 불쾌하오, 백작은 앞으로도 수천명은 나오겠지만,
베토벤은 단 한 명뿐인걸 명심하시오!."

하이든 같은 음악선배들로부터
왜 귀족들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느냐 라며 질타를 받았지만,
베토벤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며, 특히 예술가는 귀족보다 천한 직업이 아니라며 반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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