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Liszt)에
대하여 (1)
헝가리태생 원조 아이돌스타
리스트(Liszt)는 쇼팽보다 한해 늦은 1811년 오스트리아 부르겐란트(Burgenland)주 라이딩(Raiding)에서 태어났다. 당시 라이딩은 헝가리 영토였으나, 현재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을 걸쳐 오스트리아의 영토로 편입된 곳이다. 이곳 라이딩에서는 지금도 매년 천재 음악가 리스트를 기리는 리스트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헝가리 귀족의 토지관리인 아버지를 두었고, 하이든을 지원하는 집안인지라, 어릴적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던 리스트를 눈여겨 보았던 아버지는 리스트에게 음악적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리스트가 6세가 되던해부터 아버지는 리스트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10세가 되어서는 여느 피아니스트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게 되는데, 그의 첫 공개연주는 프레스부르크라는 곳에서 열렸고 많은 이들이 리스트의 천재성에 감복했다.
그때 얻은 리스트의 후원가들(음악을 사랑하는 많은 귀족들과 시민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당시 음악적 중심도시인 빈으로 이주한 리스트는 체르니(Carl Czerny)와 살이에리(Antonio Salieri)에게 작곡을 배우게 된다.
22세가 되던해, 리스트의 가족은 빈을 떠나 파리로 가서 상류 사회에 첫선을 보이고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차츰 파리의 음악 애호가들에게 알려지게 되자 그 여세를 몰아 파리 및 런던 등지에서 공개연주회를 갖는다. 동시에 오페라 <동샹슈(Don sanche)>를 발표하는등 작곡가로서의 면모까지 드러내게 된다.
리스트는 천재적인 음악기질뿐 아니라, 여성에게 인기를 얻는 기질또한 부여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죽기전 리스트에게 마지막으로 한 유언이 다음과 같았다.
"너는 여자들만 조심하면 모든 일이 잘될 것이다."
그가 처음부터 바람둥이 기질을 가진것은 아니었다. 그의 첫사랑은 그가 아버지를 여인 직후, 평생의 스승이자 후원자였던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려는듯 집착했던, 자신의 제자 생크릭 백작의 딸 카롤린이었는데, 그의 첫사랑은 생크릭 백작의 반대로 순탄치 못했고 그로 인해 그는 한동안 허무주의에 빠져 폐인생활을 했다.
하지만 곧 파리 사교계에서 알게 된 마리 다구 백작부인을 만나 슬하에 세명의 자녀인 브랑딘, 코지마(후에 코지마는 바그너의 부인이 된다), 다지엘 세자녀를 낳게 된다. 하지만 11년만에 다시 헤어지고, 4년후 러시아의 비트겐슈타인 후작부인을 만나게 된다.
잘생긴 외모, 천재적 음악재능, 깔끔한 무대매너, 넋이 나갈정도로 엄청난 연주솜씨로 매 공개 연주회때마다 수많은 오빠부대를 이끌고 다닌 리스트는 당시 신문 만평에까지 실릴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 후작부인과의 결혼에 실패한 리스트는 아버지의 유언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불쑥 수도원에 들어가 갑자기 성직자가 되어 그간의 생활을 청산하고, 한동안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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