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3일 수요일

[브람스에 대하여-2] 스승의 아내 클라라에 대한 사랑


NO. 022015.05.13
브람스 - (2)  스승 슈만의 아내 클라라에 대한 연정




▲지금은 사용되지 않지만, 예전에 독일 마르크화에 찍힌 100마르크 화폐의 슈만의 아내 클라라
그는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으며, 독일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였다.

클라라 조세핀 비크 슈만(Clara Josephine Wieck Schumann, 1819~1896). 바로 브람스의 스승인 슈만의 아내이다. 브람스에게 있어 클라라는 스승의 아내이자, 연정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스승 슈만의 죽음을 직접 눈으로 본 브람스였지만, 브람스는 절대 클라라를 스승의 아내 이상으로 진전하지 않았다. 그는 철저히 이성으로 감정을 억눌렀으며, 죽을때까지, 그녀를 존경하며 지냈다.

브람스의 평생을 통틀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은 바로 슈만 부부였다. 뒤셀도르프에서의 첫 만나 이후 브람스의 천재적인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슈만은 그를 한달간 자신의 집에서 먹고자도록 해 주었다. 슈만 부부의 따뜻한 보살핌과 그로인해 음악계에 명성을 얻게된 브람스는 그들의 은혜를 평생토록 간직하였다.

1844년 4개월간의 러시아 음악연주여행을 마치고 심신이 심각히 손상된 슈만은 정신병으로 인해 라인강에 투신자살을 시도하고, 곧 2년만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일곱명의 자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슈만을 잃은 클라라...그녀를 바라보던 브람스는 그녀에 대한 그의 감정이 단순한 연민이 아닌 사랑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는 철저히 자신을 통제한다. 그는 스스로 '저분은 나의 스승의 부인이므로 나는 그녀를 존경한다"라며 자신을 다스렸다. 

사실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난 그의 어머니와, 그의 스승의 죽음을 위해 작곡한 <독일 진혼곡>을 발표한 것도 어찌보면, 어머니를 위해서라기 보다, 그가 내면적으로 사랑했던 스승의 아내 클라라를 위로하기 위한 곡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독일 진혼곡>의 경우 죽은 사람을 위한 곡이라기 보다, 살아 있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한 곡이기 때문이다. 

이후 약 40년 동안 클라라는 브람스와 우정의 편지를 주고 받았다. 호칭은 '경애하는 부인', '나의 클라라라' '부인' 에서 '당신'에 이르기 까지 점차적으로 깊어갔지만, 그는 끝까지 우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점차 명성을 얻어가며 주변에 많은 여인들에게 인기를 얻어 갔지만, 브람스는 오히려 그런 상황을 귀찮게 여겼다. 

하루는 브람스가 어느 파티장에 참석했는데, 그때도 여느때처럼 많은 여인들이 그를 둘러 쌌다. 이를 귀찮게 여긴 브람스는 평소에 잘 태우지도 않는 담배를 태우며 자욱한 연기를 만들어 냈다. 여인들을 쫓아내기 위함 이었다. 그러자 한 여인이 "선생님, 여기는 여자들도 많은데, 꼭 그렇게 담배를 태워야 되겠어요?"라고 하자 브람스는 "천사들이 있는데 구름이 없어서야 되겠소"라고 맞받아 쳤다고 한다. 

그의 경쟁자 바그너와 비교하자면, 특히 연애관에 있어서 브람스는 순정파 중의 순정파라고 할 수 있다. 바그너는 죽을 때까지 수많은 여인들과의 염문설에 휩싸였었지만, 브람스는 끝까지 한 여인에 대한 순애보를 잃지 않았다. 

그러한 브람스에 대한 태도를 후세인들은 "내면의 정열을 이성이라는 테두리로 굳혀서 걸어왔다"라는 표현으로 평가한다. 감정을 이성으로 다스리는 그의 태도는 고스란히 그의 음악세계에도 적용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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