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7일 목요일

리스트에 대하여 (2) - 초절기교 피아노 연주가





체르니와 살리에리에게 작곡을 배웠고, 파리에서는 쇼팽과 파가니니와 친했던 리스트. 그는 평생 음악가, 문필가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고 주변인들은 리스트에게 영향을 끼쳤고, 그의 음악세계도 영향을 받았다. 특히 리스트의 피아노 기교는 파가니니의 영향을 받았는데, 파가니니의 엄청난 연주기교는 리스트의 피아노 기교에 대한 열정을 불사질렀다(한마디로 뽐뿌질을 한 것이다).



 스스로 피아노계의 파가니니가 되겠노라 결심한 리스트는 <헝가리 광시곡 19곡>, <초절기교연습곡 12곡>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스스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교에 도전하는 음악가로 자리잡는다. 이러한 기교를 요하는 리스트의 곡은 지금도 피아노 콩쿨이나 입시곡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런 리스트의 기교발전은 그의 연주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지게 했는데, 자신의 연주를 듣는 태도가 좋지 못할때 그는 연주를 멈추곤 했다. 특히 러시아 황제 앞에서 연주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러시아 페테르스부르크 궁전에서 연주할때, 니콜라우스 황제가 리스트의 연주를 듣던중 부관에게 작은 소리로 뭔가 지시를 하자, 리스트는 연주를 멈추었다. 깜짝 놀란 황제는 왜 연주를 멈추냐고 물었더니, 황제가 말씀하실때 누구나 침묵을 지켜야 하는 법도를 알고 있다며 되받아 쳤다고 한다.

빅토르 위고, 특히 쇼팽의 연인이었던 조르드상드(George sand)와의 만남으로 낭만주의적 사고를 접한 리스트는 자신의 시적인 감성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어했고 결국 '교향시(Symphonic Poems)'라고 하는 새로운 음악장르를 창조한다.





또한 리스트는 당대 유명했던 많은 오페라, 교향곡등을 모두 한대의 피아노로 연주해 보이고자 했고, 피아노라는 악기의 표현성을 한단계 끌어 올리는 역할을 했다. 즉, 피아노 한대로 완벽한 음악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린 것이다.

말년에는 성직자로써도 활동했는데, 비트겐슈타인 후작 부인과의 결혼에 실패하면서 인생의 쓴맛을 본 리스트는 52세 나이인 1863년에 몬테 카를로의 마돈나 델 로사리오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이때부터 종교음악을 작곡하였다. 유명한 곡으로는 <그리스도가 탄생하시다>가 있다. 그는 카톨릭 주최의 많은 자선음악회에서 연주함으로써 교황의 신임을 얻어 바티칸으로 초청되고 3개의 성직을 받기도 했다.

<몬테카를로>

점차 명성을 얻어간 리스트는 헝가리 왕실 고문으로도 임명됨으로써, 로마, 바이마르, 부다페스트를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된다. 1886년 폐렴으로 세상을 따나기 불과 며칠전까지 연주를 하였던 걸로 봐서 그의 꽉 채워졌던 음악인생은 다른 많은 음악가들과 비교했을때 비교적 행복한 음악인생을 산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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