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9일 화요일

차이코프스키에 대하여 -2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 차이코프스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에는 깊은 애수와 어두운 분위기가 깃들어 있다고들 하는데, 그것은 그의 성격과 연관이 있다. 그는 어릴때부터 유별나게 감수성이 예민하고, 내성적이었다. 한 일화를 보면 그가 얼마나 감수성이 기민했었는지 알 수 있다. 어느날 차이코프스키의 집에서 아마추어 실내악이 연주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린 차이코프스키가 사라진 것이었다. 유모가 2층에 가보니 차이코프스키가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고 한다. "주여, 제게 자비를 베푸시어 조금 전에 제 귀를 통해 머릿속으로 들어간 그 음악을 도로 내쫓아 주십시오"...조금은 손이 오그라드는 대목이다.

이처럼 기민한 성격은 그의 작품에 대해서도 스스로가 엄격한 태도를 지녔는데, 한곡이 완성되는데 엄청나게 오랜 세월이 걸렸을 뿐만 아니라(거의 한번쓰면 절대 수정을 하지 않았던 모차르트와는 정 반대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들여 작곡한 곡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단번에 폐기해 버릴 정도였다.

그의 이러한 성격은 비단 작품뿐 아니라 그의 결혼생활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그다지 좋지 않은 방향으로 였다. 1868년 자신의 음악을 인정해 주던 벨기에 출신 여자가수인 데지레 아르토와 사랑에 빠져 약혼하기에 이르렀지만, 주변의 반대에 맞닥드린다. 이때 차이코프스키의 우유부단하고 예민한 성격이 한몫을 하여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게 되자, 아토르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 버리고 만다. 

또 37세에 그보다 9살 연하인 그의 제자 안토니나 미류코바의 열렬한 구애를 받게 되어 마지못해 결혼을 하게 되지만, 애초에 사랑하지 않았지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했던 차이코프스키는 결혼후 거의 아내를 돌보지 않고 음악에만 전념해 버린다. 이로인해, 곧 결혼생활은 파탄에 이르게 된다. 심지어 자신의 이러한 태도를 아내가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서는 스스로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고 마침내 아내를 버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도주해 버린다.



후원자 메크부인으로 인해 찾은 안정


<차이코프스키의 후원자 메크부인>

1876년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로 일하고 있을때 차이코프스키는 파리에서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보고 큰 감동을 받고 귀국하자마자 그의 주옥과도 같은 발레 음악인 <백조의 호수>를 작곡하게 된다. 볼쇼이극장의 의뢰를 받아 작곡한 <백조의 호수>는 훗날 크게 명성을 얻게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그다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차이코프스키의 대작 발레곡 백조의 호수>

차이코프스키의 생계의 걱정을 덜어준 후원자 메크부인과의 만남으로 차이코프스키는 교수직을 그만두고 작곡에만 전념할수 있게 된다. 철도 경영자의 미망인이었던 폰 메크 부인은 그의 음악을 경외하며 그의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처음에는 악보 출판비를 대주고, 빚을 갚도록 돈을 빌려주다가 1877년부터는 1년에 6천 루블씩 지원해 주었다. 메크부인도 대단했던게, 평생 그렇게 차이코프스키를 지원해 주고도, 정작 본인은 우연히 마주친 일을 제외하고는 차이코프스키를 개인적으로 한번도 만난적이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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