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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5일 목요일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The Classic travel]-모차르트-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 모차르트
Eine Kleine nacht musik - Mozart
현악 세레나데 G 장조(K.525)

모차르트의 음악은 주로 경쾌하고 단순히 시작하는 경향이 많다.
그 이유는 당다 고전주의 음악가들이
한결같이 본인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것이 아니라,
의뢰받은 음악만을 주로 작곡했기 때문에,
개인의 감정이 표현되는 것이 극히 억압받았기 때문인데,

즉 천재적인 음악가였던 모차르트에게
의뢰받은 곡은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는 곡이므로,
오히려 별다른 감정이 들어가지 않았고,
심지어는 약간 시큰둥한(?) 느낌까지 들어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점차적으로 아름답고 화려해 지게 되는것은
점점 오선지를 채워나가면서 점차적으로 곡에 몰입되어
그의 천재성이 발현되어서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모차르트의 대표곡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Eine kleine Nachtmusik)》는
현악 세레나데 G 장조(K.525)》의 다른 이름으로, 
모차르트 에서 1787년에 작곡한 실내악곡이다.

실내악곡이란, 실내에서만 연주되는 곡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궁정, 왕궁등의 행사에서 연주되던 곡을 말한다.

이는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라는 말은 ‘소야곡(小夜曲)’
는 ‘밤의 세레나데’를 뜻한다.



현악 사중주(두 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위해 쓰였으나,
 더블 베이스가 추가되는 경우도 있으며,
각 악기의 주자가 한 명 이상인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기도 한다.

이 곡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악장 - 알레그로 (Allegro)
2악장 - 로망스 - 안단테 (Romance - Andante)
3악장 - 메뉴에토 - 알레그레토 (Menuetto - Allegretto)
4악장 - 론도 - 알레그로 (Rondo - Allegro)

모차르트의 기록에 따르면, 이 곡은 다섯 악장으로 되어있었다고 하나,
그 가운데 두 번째 악장(미뉴에트와 트리오)이 발견되지 않았었다.
음악학자인 알프레드 아인슈타인
 피아노 소나타 B flat 장조 (K.498a)의 미뉴에트가 사실
그 발견되지 않던 악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의 신빙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2015년 3월 3일 화요일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The Classic travel)]-고전주의 음악의 완성(모차르트/하이든)

모차르트와 하이든은 서로다른 과정을 겪었지만
결국 고전주의 음악을 완성하기에 이르른다.

형식과 내용,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통해
완벽한 아름다움을 실현하려는 고전주의의 이상은
다양한 느낌을 대조하면서 전체적인 조화와 통일을 추구하는 형태로 발전되었다.

소나타(Sonata)형식은 바로크시대에도 있긴 했지만,
고전주의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독립장르로 자리잡았다.
바로크시대의 단일주제성이 '서로다른것의 조화'를 추구했던
고전주의 시대에 와서는 복수의 주제로 재미와 다양성을 추구하였다.

서로다른 분위기를 지닌 세 부분 - 제시부, 전개부, 재현부 이
각각 완결성을 가지지만, 또 전체적으로도 조화를 이루면서
다양성, 조화와 통일을 한꺼번에 이루는 것이다.

제시부는 밝고 빠른 느낌이고,
전개부는 차분하고 느린 곡조,
마지막 재현부는 제시부의 느낌으로 돌아가게 된다.

소나타형식은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형식으로 고
전주의 음악을 대표하게 되었고, 이 소나타 형식의 완성을 통해
서양 음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또한 고전주의 시대에는 이전 바로크 시대에 유행하던 복잡한 대위법을 버리고,
주 멜로디에 화음 반주를 넣어 조화를 이루는 음악을 선택했다.

즉 다성음악이 화성음악으로 바뀐 것이다.


주 멜로디가 하나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따라 부를수 있게 되었다.

2015년 3월 1일 일요일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The Classic travel)]-모차르트의 오페라들과 그의 말년(Operas of Mozart)



모차르트의 오페라와 그의 말년

 모차르트 당대의 시대상 모차르트가 성인이 될 무렵,
곧 18세기 후반 유럽은 격동을 겪고 있었다.
 다름아닌 산업혁명의 바람이 그것이었다.
 공장생산으로 인해 중산층이 귀족이나 왕보다 더 많은 부를 획득하였다.
 그들은 예전처럼 더이상 왕이나 귀족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지 않았다.
 음악계의 경우에도 이와 편승하여,
 예전처럼 더이상 음악가들이 왕이나 귀족들에게 100% 종속되어 일하거나,
그들이 원하는 음악만을 작곡하지 않았다.

 모차르트는 원래 성격상 남 밑에서 일하는 성격이 못 되었다.
 그는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해 한군데서 일을 오해 하지 못했고, 
곧 독립적 음악가의 길을 가게 되었다.
 또한 위와 같은 시대적 조류도 모차르트가
 독립 음악가의 길을 가는데 일조하였고,
 후에 태어난 베토밴과 같은 음악가들은 혼자 힘으로
생계를 유지할 정도가 가능하게 되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모차르트는 많은 소나타, 협주곡, 교향곡들을 지었지만, 
그중에서도 오페라가 으뜸이다.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는 
모차르트가 독립음악가가 되면서 처음 작곡한 곡이고,
 타락한 귀족들을 비웃는 내용의 <피가로의 결혼>
 <돈 지오반니>,
 그리고 <마술피리>는 모차르트의 3대 오페라라 불리운다. ​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피가로의 결혼>



<돈 지오반니>


<마술피리>

 모차르트의 말년 

 독립음악가는 곧 프리랜서인데,
 우리가 잘 알듯이 프리랜서들은 수입이 일정치 않다. 
곧 대기업에 다니면,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대신
고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지만, 
프리랜서가 되면 자유로운 대신
불규칙적 수입으로 살아야 하는것과 마찬가지이다.

 모차르트또한 그러했다.
 오페라를 통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재태크 기술이 없었는지..
 모두 탕진해 버리고 말았다. 
자기자신이 우선 경제감각이 부족했고,
아내 콘스탄체또한 사치가 심해서 였다.

 곧 모차르트는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건강또한 악화되면서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던 모차르트는 

불후의 명작 교향곡 39, 40, 41번을 작곡하고
 마지막 해까지 <마술피리>,
<레퀴엠>을 작곡하고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너무 가난하게 죽은 나머지, 묘비없는 무덤으로 쓸쓸히 남겨지고 말았다.







2015년 2월 27일 금요일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대장간 집 아들 하이든(Haydn)



대장간 집 아들 하이든
 1732년 오스트리아 로라우의 대장간 집안에서 태어난 하이든은,
재능이 있었지만, 음악을 잘 모르는 부모를 만나 하마터면 재능이 완전히 뭍혀버릴수도 있었다.
다행히 6살때 그의 친척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데려가 교욕을 받을수 있었다.
그리고 8살때, 빈의 유명한 교회 오르간 연주자의 눈에 띄어 합창단원에 입단하게 되었다.
10년동안 합창단원생활은 변성기를 맞이하면서 종료되었다.
그 이후에 귀족들의 자녀를 가르치던 콜라 포르포라를 만나
그의 반주자로 일하면서 차츰 재능있는 젊은 음악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모차르트의 성품이 좋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천재적 재능은 그가 여느 또래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가며
습득했어야 할 사회성의 결핍을 가져왔고,
더군다나 그의 작은키나 못생긴 외모로 인한 열등감은 그를 더욱더 고립시켰다.


이런 모차르트와 상반되게, 하이든은 정말 인품이 좋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31년간 같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윗사람이나 동료들과 어떠한 마찰도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다른사람을 배려하는 성격의 소유자 였다.
에스테르히지 후작 밑에서 일하던 시절,
하이든이 많은 곡을 발표하면서 그의 단원들은 휴가도 제대로 못갈정도로 바빠졌다.
이에 단원들을 위로하기 위해 교향곡 45번 <고별>교향곡을 작곡했다.
마지막 공연중이 끝날때쯤, 단원들이 하나씩 촛불을 끄면서 나갔고,
이를 본 에스테르히지 후작은 하이든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단원들 모두에게 장기휴가를 주었다고 한다.





2015년 2월 26일 목요일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


모차르트는 신동이라고 불리웠지만, 사실 그 이상이었다고 한다.
아이큐가 230~250정도는 된다고 하니...

​ 
다섯살때 작곡을 시작했고,
여덟살때 교향곡 1번을 작곡했다.





열한 살 때는 오페라 <바스티안과 바스티엔>을 작곡했다.




열네살때는 아버지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다 11분짜리 곡 알레그리가 작곡한 합창곡 <미제레레>를  한번듣고,
틀리지 않고악보를 그려냈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곡을 쓰면서 수정하는 일이 없이 한번에 곡을 썼다.
일반적으로 음악가는 한곡을 쓰기위해 수차례 악보를
썼다 찢었다를 반복하는 것과는 상반적인 일이다.
그는 머릿속에 이미 짜져있는 곡을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당구를 치면서 작곡을 하고, 한곡을 써 내려가면서 이
미 머릿속에서 다른 곡을 구상할 정도로 그는 천재였다.

모차르트는 1756년,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7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그중 다섯을 잃고 딸 난넬과 막내 볼프강만 남았다.

그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음악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고,
엄격한 교육을 시켰다.

아들의 천재성을 알아본 아버지는 볼프강이 여섯살때 유럽전역으로 연주여행을 떠났다.

빈에서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연주를 하게되었을때,
모차르트는 실수로 넘어지게 되었는데,
어떤 여자아이가 모차르트를 일으켜 주었다.
그때 모차르트는 감사하며 추후 자라서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했는데..




그 여자는 훗날 우리가 아는 마리 앙투아 네트 였다고..

2015년 2월 23일 월요일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음악의 신동 모차르트(Mozart)/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Hydn) (프롤로그)



<시대의 천재 모차르트>

모차르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도움이 되는 영화는
<Amadeus>아마데우스 인데, 거기서 모차르트를 시기하는 살리에리 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신이 왜 하필 인격적으로 천박하고 엉망진창인 모차르트에게
엄청난 음악적 재능을 주었는지에 대해 원망한다.

사실 실존인물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그렇게 미워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는 모차르트보다 고귀한 대우를 받았다.

어쨋든 그만큼 모차르트는 음악에 있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는 인류 역사상 몇 안되는 천재였다고 한다.
바로크시대에 대위법대신 화성음악과 소나타 형식을 발전시키는 업적을 세운다.

이미 언급되었듯이 모차르트의 천부적인 재능과는 다르게
그는 어린이아같고 제멋대로인데다 변덕스럽기 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인품을 압도하는 그의 천부적 재능과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

심지어 그를 빗대어 "하늘에서 잠시 쫓겨난 음악천사"라고도 한다.

하지만, 그런 천부적재능때문이었던지 그는 서른다섯의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그는 주로 오페라와 협주곡, 교향곡등 두루두루 많은 장르의 음악을 남겼다.





<신사 하이든>
그에 반해 동시대에 활동했던 하이든은 무척 어른스럽고 점잖은 사람이었다.
그는 상냥하고 친절해서 주위 사람들로 존경을 받고 생활도 모범적이었다.
정직하고 근면한데다 유머까지 갖춘 하이든의 별명은 '파파하이든'이었다고 한다.
 
그는 모차르트와 다르게 일흔여섯까지 살면서 고전파 음악의 대부역할을 다 하였다.
한가지 특징은 그가 교향곡을 주로 작곡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