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8일 금요일

피아노 연습곡에 대하여 - 쇼팽(Chopin)의 프렐류드(Prelude) vs 바흐(Bach)의 평균율(Prelude & Fugue)


쇼팽의 프렐류드(Prelude) vs 바흐의 평균율(Prelude and Fugue)





낭만파 음악의 선구자인 쇼팽, 바로크 음악의 선구자인 바흐. 이 두 대가의 음악을 비교한다면?

쇼팽의 대표적 서정적 곡인 전주곡(Prelude)는 24개의 짤막한 곡들로 구성된 한편의 아름다운 시와 같은 곡이다. 너무 길어서 지루할 수 있는 교향곡과는 다르게 대부분 1~2분 사이면 끝이 나는 짤막한 곡들이지만, 저마다 다른 조로 이루어져 있어 저마다의 색깔과 맛을 지니고 있는 전주곡은 전 곡이 끝날때까지 지루한 맛이 전혀 없다. 24개 곡에는 표제가 없다. 그래서 지휘자 금난새 선생님은 대학시절 이 곡들에 저마다의 제목을 각각 붙여 보셨다고도 하니, 나도 시간날때 24개 표제를 한번 지어보아야 겠다.

아래 루빈스타인의 쇼팽 프렐류드 전곡을 듣다보면 아마 몇곡쯤은 귀에 아주 익은 곡들이 있을 것이다. 24개 곡중 한곡 정도는 능숙하게 연주할 정도로 연습을 해 본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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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피아노를 배울때 체르니를 마치면 일단 바흐로 넘어갔고, 바흐의 곡을 마치면 쇼팽으로 넘어갔다. 그 말은 그만큼 피아노계에 있어서 이 두사람은 예술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교육적으로도 뛰어난 교재가 될 만큼 음악계의 바이블이라고 할만 하기 때문이 아닐까?

바흐의 평균율 즉 클라비어곡집은 24개 장조와 단조로 쓴 전주곡 모음곡 2권으로 구성되는데 처음 이 곡이 작곡된 의도는 교육적 목적이었다고 한다. 피아노 학습자에게 있어서는 기본적인 책으로 자리잡고 있긴 하지만, 작품 자체로 놓고 보았을때도 최고의 예술작품임에 틀림없다. 혹자는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가 신약성서라면, 바흐의 평균율은 구약성서라고 까지 칭하기도 한다. 

지금이야 피아노 건만이 한 옥타브에 12개로 구성된 것이 기본이고 매우 당연한 것이지만, 바로크 시대 이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평균율이 아닌 순정율에 의한 연주 및 작곡 뿐이었다. 순정음률은 12반음중 두음의 진동비가 2:3일때의 음정으로 울림이 매우 아름답지만, 조바꿈이 불가능하다. 자연배열음의 한 옥타브를 5도의 음정으로 계산한 음률로서 오차가 발생하여, 실제로 들리는 소리는 이런 물리적 비율에 관계 때문에 조율은 반음이 낮아져 조바꿈을 하여 화음을 연주하면 심한 맥놀이(두 물체간의 진동이 조금이라도 다르게 되면 서로 간섭하며 생기는 비브라토 현상)가 생겨 소음이 발생하게 된다.

바로크 시대에 피아노의 발명과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평균율은 12개의 건반에 자연 배열음을 각자 비율에 의해 동일하게 나눠 준다. 즉 자연 배열음의 음정비는 한 옥타브에서 1:2의 음정의 비율을 가지고 있다. 옥타브 단위로 그 옥타브를 12제곱근을 해서 얻은 각개의 건반을 일정한 평균의 비율을 이용하여 조율하기 때문에 이를 평균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평균율은 건반간의 간격이 똑 같기 때문에 어떤 화음으로도 어울리게 연주할 수 있고 어느 조로도 조바꿈이 가능하다. 평균율의 발견으로 바흐 이후 후세 모두가 현재까지 평균율 조율법을 사용하고 있다. 음악은 수학이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음악도 잘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일까?

바하의 평균율은 대부분 2~3분을 넘지 않는 곡들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한번에 다 들어볼 만 하다. 

2015년 5월 7일 목요일

리스트에 대하여 (2) - 초절기교 피아노 연주가





체르니와 살리에리에게 작곡을 배웠고, 파리에서는 쇼팽과 파가니니와 친했던 리스트. 그는 평생 음악가, 문필가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고 주변인들은 리스트에게 영향을 끼쳤고, 그의 음악세계도 영향을 받았다. 특히 리스트의 피아노 기교는 파가니니의 영향을 받았는데, 파가니니의 엄청난 연주기교는 리스트의 피아노 기교에 대한 열정을 불사질렀다(한마디로 뽐뿌질을 한 것이다).



 스스로 피아노계의 파가니니가 되겠노라 결심한 리스트는 <헝가리 광시곡 19곡>, <초절기교연습곡 12곡>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스스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교에 도전하는 음악가로 자리잡는다. 이러한 기교를 요하는 리스트의 곡은 지금도 피아노 콩쿨이나 입시곡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런 리스트의 기교발전은 그의 연주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가지게 했는데, 자신의 연주를 듣는 태도가 좋지 못할때 그는 연주를 멈추곤 했다. 특히 러시아 황제 앞에서 연주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러시아 페테르스부르크 궁전에서 연주할때, 니콜라우스 황제가 리스트의 연주를 듣던중 부관에게 작은 소리로 뭔가 지시를 하자, 리스트는 연주를 멈추었다. 깜짝 놀란 황제는 왜 연주를 멈추냐고 물었더니, 황제가 말씀하실때 누구나 침묵을 지켜야 하는 법도를 알고 있다며 되받아 쳤다고 한다.

빅토르 위고, 특히 쇼팽의 연인이었던 조르드상드(George sand)와의 만남으로 낭만주의적 사고를 접한 리스트는 자신의 시적인 감성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어했고 결국 '교향시(Symphonic Poems)'라고 하는 새로운 음악장르를 창조한다.





또한 리스트는 당대 유명했던 많은 오페라, 교향곡등을 모두 한대의 피아노로 연주해 보이고자 했고, 피아노라는 악기의 표현성을 한단계 끌어 올리는 역할을 했다. 즉, 피아노 한대로 완벽한 음악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린 것이다.

말년에는 성직자로써도 활동했는데, 비트겐슈타인 후작 부인과의 결혼에 실패하면서 인생의 쓴맛을 본 리스트는 52세 나이인 1863년에 몬테 카를로의 마돈나 델 로사리오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이때부터 종교음악을 작곡하였다. 유명한 곡으로는 <그리스도가 탄생하시다>가 있다. 그는 카톨릭 주최의 많은 자선음악회에서 연주함으로써 교황의 신임을 얻어 바티칸으로 초청되고 3개의 성직을 받기도 했다.

<몬테카를로>

점차 명성을 얻어간 리스트는 헝가리 왕실 고문으로도 임명됨으로써, 로마, 바이마르, 부다페스트를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된다. 1886년 폐렴으로 세상을 따나기 불과 며칠전까지 연주를 하였던 걸로 봐서 그의 꽉 채워졌던 음악인생은 다른 많은 음악가들과 비교했을때 비교적 행복한 음악인생을 산 것을 알 수 있다.